미국여행2015.08.22 11:20



우선 미국의 지도공부를 잠간 해볼까 합니다. 기본적인 지리를 알아야 이야기가 입체적으로 머릿속에 들어오기 때문인데, 편의상 제가 살고 있는 펜실베니아 주 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하하.. 사실은 피츠버그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   


펜실베니아는 주 이름이고 피츠버그는 펜실베니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펜실베니아 주의 왼쪽 끝에 붙어있습니다.


펜실베니아 주에서 첫번째로 큰 도시는 필라델피아인데 펜실베니아 오른쪽 아래에 붙어있습니다.  

(펜실베니아의 주도는 해리스 버그라는 작은 도시입니다. )



미국은 하도 커서 지리공부에 별 관심이 없는 서부의 미국인들은 가끔 펜실베니아와 필라델피아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저도 인디아나 주에 살고 있을때에는 자꾸 혼동하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확실하게 외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한국에 계신분들은 어디가 어딘지 자꾸 헷갈리시겠지만 이 기회에 아시게 된다면 타주에 살고 있는 보통 미국사람들 보다 미국 지리를 훨씬 더 많이 알게 되는 셈이므로 조금 힘드시더라도 잠간 공부해 보고자 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펜실베니아는 주 이름이고 필라델피아는 오른쪽 아래에 있는 도시 이름입니다. (ㅎㅎ..) 


우선 아래의 지도를 보세요. 빨간색 별표시 된 곳이 피츠버그 입니다.  젊은 조지 워싱턴의 인생을 결정 짓는 중요한 곳이 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피츠버그를 둘러싼 직사각형 모양의 지역이 펜실베니아 주입니다.  


펜실베니아의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필라델피아가 위치 합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이 필라델피아 입니다.


그리고 이 직사각형 모양의 펜실베니아 주 윗쪽으로 놓인 지역이 뉴욕 주 입니다.  뉴욕 주 의 주도는 올버니 이고 유명한 뉴욕시는 올버니 아래쪽으로 죽 내려온 뉴욕주의 오른쪽 아래 귀퉁이에 있습니다.


 

뉴욕주의 왼쪽에 버팔로 라고 하는 도시가 바로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곳입니다. 



이 지형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있으면 여러가지로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편리 합니다. 

  



펜실베니아의 크기를 비교해보니 남한과 비슷한 정도의 크기이고 옆으로 길게 누워있는 형상입니다.  그리고 펜실베니아 주의 주도는 '해리스 버그'라고 하는 작은 도시인데 해리스 버그는 펜실베니아의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아래 지도에서 파란색으로 남한 지도를 펜실베니아 주 아랫쪽에 놓았습니다. )


 펜실베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인 필라델피아와 그 다음으로 큰 피츠버그는 자동차로 약 5 시간 정도가 걸리니 서울에서 부산정도의 거리라고 할수 있습니다.  


조지 워싱턴이 역사의 무대에 처음으로 등장할 무렵인 1752년 무렵에는 피츠버그가 "포크 오브 오하이오" 라는 이름으로 불렸습니다.(Forks of Ohio) 왜냐구요 ? 그것은 이곳이 두개의 강이 합쳐지는 지역으로 세개의 물길이 만나는 가운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하이오" 라는 이름은 현재의 오하이오 (주 이름) 과 직접적인 관계이기 보다는 당시 개척지역인 펜실베니아 보다 서쪽 내륙 지방으로 미 개척 지역을 크게 뭉뚱그려 오하이오 지역이라고 불렸기 때문에 오하이오에서 가장 중요한 갈림길 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입니다. 

당시에는 자동차가 없으므로 물길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미국의 동부는 길이 나지 않은 지역에 자연림 숲이 아주 빽빽하게 들어 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으로는 길도 나지 않아서 말을 타고 다니기 힘들 정도로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곳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강을 따라서 탐험이나  교역을 하게 되고 그래서 강이 마치 현대의 고속도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개의 물길이 만나는 포크 오브 오하이오는 이무렵 상당히 중요한 장소로 떠 올랐습니다.     



1752 년 당시의 지도 입니다. Fort Duquesne 라고 쓴곳이 바로 "포트 두케인" 으로 소리나는 장소로 조지 워싱턴이 젊은 시절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손에 넣으려고 줄다리기를 하던 장소 였습니다. 프랑스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중이었고, 영국은 남동쪽에서 올라가는 중이었습니다. 젊은 조지 워싱턴은 쉽게 말해 영국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피츠버그의 모습입니다. 아직도 '알리게니' 강과 '모농고힐라' 강이 '오하이오' 강으로 합쳐지는 장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포트 두케인은 없어져 버리고 대신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 가운데에 포트 두케인이었다는 동판이 놓여있습니다.








포트 두케인의 당시 모습. 미국에서 Fort 라고 하는 곳은 적의 공격에 방어를 하기 위해 벽으로 둘러싼 성채를 말하는데 대체로 지었을 경우, 이렇게 뾰족한 화살촉 같이 코너를 만드는게 특징입니다. 미국 땅은 대체로 평평한 지역이 많으므로 군사적 요충지에 이렇게 Fort 라고 불리는 성을 만들어 유사시에 방어군이 성벽안에서 밖으로 상대를 쉽게 사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수있는"산성"의 개념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현재의 모습.  



자 그럼, 포트 두케인이 어떻게 해서 미국 역사에 등장하는지 살펴 보기로 하겠습니다. 






1620 년의 미국의 모습입니다. 


주황색으로 표시된 싼타페와 세인트 어거스틴 두 도시는 스페인이 건설한 곳이고, 보라색의 퀘벡은 프랑스가 건설한 곳이고 , 붉은 색의 제임스 타운과 플리머스는 영국에서 온 사람들이 건설한 곳입니다. 


인디언이 살고 있는 미지의 대륙에 유럽인들이 와서 각기 작은 거주지 한뼘씩 차지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특히 필그림 파더가 상륙한 플리머스 지역을 뉴 잉글랜드 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의 뉴 햄프셔, 보스턴 등지 입니다. 뉴욕시 보다 훨씬 북쪽에 있는 동네 입니다.  

제임스 타운은 뉴욕 보다 훨씬 아랫쪽에 있는 곳으로 오늘날의 버지니아 부근 입니다.      




영국은 네델란드가 차지하고 있던 뉴욕을 빼앗으며 동쪽 연안을 따라 도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빨간색) 

한편 퀘벡을 만든 프랑스는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몬트리올을 건설하고 호수를 건너 미시시피 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탐색을 하는데 영국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드디어 젊은 조지 워싱턴의 활동 무대가 되는 1750 년 경이 되자 다음과 같은 지도가 형성되었습니다. 빨간색으로 표시한 영국은 보스턴, 뉴욕, 필라델피아, 챨스타운 등, 배가 닿을수 있는항구도시에 인구가 북적이는 콜로니 (식민지)를 건설한 반면, 프랑스(보라색) 나 스페인 ( 오렌지색) 령의 땅은 서류상 국경만 그려져 있고 아직 유럽인들이 들어와 살지 못하는 인디언들의 땅입니다. 예를 들면 당시 스페인 령의 로스 엔젤레스 전체인구가 300 명 가량 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프랑스는 케벡과 몬트리올에 주로 인구가 몰려있는 상태에서 아랫쪽 항구도시 뉴 올리언즈에 콜로니의 거점을 확보하고 내륙지방의 육로를 만들어 이 두 지역 (퀘벡 - 뉴 올리언즈) 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하려고 노력중이었습니다.  




자, 이제 결론 입니다....






노란색 별표로 표시된 "포크 오브 오하이오" 지역이 당시  프랑스에게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떠올랐는데 바로 군사적으로 , 인구적으로 중심지역인 퀘벡 몬트리올에서 배를 타고 호수를 손쉽게 건넌후 내륙지방으로 내려오면서 영국의 영향력을 견제할수 있는 최전방 지역이면서 뱃길 교통의 요충지가 될수있는 세개의 물길이 만나는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프랑스가 건설한 요새가 "포트 두케인"입니다. 오늘날의 피츠버그 이고 펜실베니아 주에  속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이곳이   1750년 당시 미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지역이 되어가고 있었고, 젊은 조지 워싱턴은 목숨을 걸고 이곳을 넘나 들었습니다.  


시대가 조지 워싱턴이라는 인물을 등장 시킨셈이지요..... 

과연 조지 워싱턴은 이런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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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룡파리 mrdragonfly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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